자립생활 자료실

쪽방주민들 “오세훈이 살아도 좋을 공공주택 지어라”

기장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22. 10. 12. 13:01

‘약자와의 동행’ 한다고 내놓은 정책
동행식당 식권 주더니 “청결한 복장으로 가라”
에어컨은 달았지만 건물주가 요금 걱정하며 안 틀어…
쪽방주민들 “공공주택 제공이 근본적 해결책”

쪽방주민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시 동자동·양동·창신동·돈의동 쪽방주민들이 서울시청 앞에 집결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쪽방주민들은 지난 7월 12일에 면담요구서를 제출했으나 오 시장은 답변하지 않고 있다.

쪽방주민들과 2022홈리스주거팀 등 시민사회단체는 22일 오후 3시, 서울시청 동편 도로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약자와의 대화 없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라며 오세훈 시장을 규탄했다. ‘약자와의 동행’은 지난 7월 1일, 오 시장이 39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하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쪽방주민이 받은 동행식당 안내문. △식당 이용명부 작성 △주류 구매 불가 △기물 파손, 소란, 폭행 적발 시 식권 지급 제한 △점심시간에는 3인 이상 방문 △청결한 복장으로 방문 등의 방침이 적혀 있다. 사진 동자동사랑방

- 동행식당 식권 준다더니 “소란 피우지 말고 옷 깨끗하게 입고 가세요”

오세훈 시장은 취임 첫날 ‘노숙인·쪽방주민 3대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쪽방촌 주변 ‘동행식당’ 지정·운영 △노숙인 시설 공공급식 횟수 확대 및 급식단가 인상 △에어컨 설치 등 폭염대비 쪽방주민 생활환경 개선 등 지원방안을 공개하며 “약자 동행 특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각오를 보여드리기 위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이 같은 정책이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거환경 개선 같은 근본적 대책이 누락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2홈리스주거팀은 “오세훈 시장은 일시적 응급처방 같은 정책을 펼치면서 쪽방주민을 서울시의 선전과 상징으로 소비한다”라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오세훈 시장의 정책이 시행된 이후, 쪽방주민은 쪽방상담소에서 ‘동행식당 안내문’을 받았다. 안내문에는 쪽방주민이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식당을 이용할 경우 지켜야 할 방침이 적혀 있다. △식당 이용명부 작성 △주류 구매 불가 △기물 파손, 소란, 폭행 적발 시 식권 지급 제한 △점심시간에는 3인 이상 방문 △청결한 복장으로 방문 등이다. 쪽방상담소는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으므로, 서울시가 세운 방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김선희 돈의동주민협동회 대표는 “7천 원이면 짜장면 한 그릇도 친절하게 배달하던 중국집이 동행식당 식권으로는 배달하지 않는다. 동행식당에 방문하면 내 이름과 식권번호를 별도의 명부에 적어야 한다. 오세훈 시장과 ‘동행’하는 게 가난하다고 낙인찍히는 일인가?”라고 성토했다.

또한 김선희 대표는 “우리도 손님이지만 동행식당에선 술을 마실 수 없고, 테이블 차지한다고 혼자서도 못 가고, 복장까지 신경 써야 한다. 이걸 ‘약자와의 동행’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리가 가난할지언정 오 시장 못지않은 자존심을 갖고 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고 규탄했다.

에어컨의 경우 방마다 설치된 게 아니라 복도에 한 대씩 설치됐다. 또한 서울시는 가구당 5만 원 한도로 전기요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박종만 양동쪽방주민회 부위원장은 에어컨 바람을 쐐 본 적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박종만 부위원장은 “집주인(쪽방 건물주)이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잠깐만 틀어주고 금세 끈다. 더 틀어달라 하고 싶지만 우리가 전기요금을 물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냥 있는다”며 “더울 수밖에 없는 건물을 지어놓고 사람을 살게 하는 게 제일 심각한 문제”라고 성토했다.

정대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업이사가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동자동 공공개발 미뤄지는 사이 40명 사망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계획은 지난해 2월 5일 발표된 이후 조금도 진전된 바가 없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까지 지구지정 고시가 완료됐어야 했다. 지구지정 고시가 끝나야 본격적인 공공개발 사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공공개발구역에 땅과 건물을 가진 소유주들의 민간개발안을 검토한다며 시간을 끌더니, 공공개발 계획을 발표한 지 2년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정대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업이사에 따르면 공공개발 계획 발표 후 현재까지 40명이 넘는 쪽방주민이 사망했다. 정대철 이사는 “공공개발 계획이 발표됐을 때 ‘이제 욕실 있는 집에서 살 수 있겠다’고 좋아하던 주민이 있었다. 하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 없게 됐다. 평소에 몸이 안 좋았는데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며 “집 같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주민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국토부는 더는 방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라”라고 요구했다.

한 활동가가 ‘시혜가 아닌 권리로! 오세훈 시장은 대화에 나서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양동 민간개발, 투쟁 끝에 공공주택 짓지만 고작 4평

양동 쪽방촌 재개발 구역은 현재 민간개발이 진행 중이다. 재개발 구역 중 11~12지구 쪽방 건물주들은 쪽방주민에게 재개발 사실을 숨긴 채 ‘건물이 낡아서 리모델링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업종 변경을 하려고 한다’ 등 갖은 이유를 대며 주민을 사전 퇴거시켰다. 재개발 사실을 그대로 알리면 법에 따라 주거 이전비를 지급하고 임대주택도 공급해야 하는데, 이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선(先)이주-선(善)순환 대책을 중심으로, 퇴거 없이 쪽방주민을 재정착시키는 공공개발과의 차이점이다.

쪽방주민과 주거권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2019년 말부터 폭력적 민간개발과 책임을 방기하는 지방자치단체를 규탄하며 집회, 문화제, 기자회견 등을 열어 투쟁했다. 2020년 4월부터는 주민 자치 모임도 결성됐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11~12지구의 개발계획이 변경됐다. 쪽방 주민에게 영구 공공임대주택 182호를 공급하고 사회복지시설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영구 공공임대주택 면적이 14㎡(약 4평)로 너무 좁다. 이는 2011년에 도입된 1인 가구 최소 면적 기준에 해당하는 수치다. 10년 넘게 최저 주거기준이 바뀌지 않은 것이다. 2022홈리스주거팀은 “14㎡는 인간답게 살기에 적절한 면적이 아니다”라고 규탄했다.

박종만 양동쪽방주민회 부위원장은 “강산이 변했을 이 시대에 4평에 살아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공공임대주택 건립을 기다리며 작년에는 주민 30여 분이 돌아가셨다. 현재 남은 주민 180명 중 약 70%가 65세 이상의 고령층”이라며 “오세훈 시장은 민간개발 정책을 제발 재고하라. 민간 개발업자만 배를 불리는 사이에 우리는 힘들게 매일을 산다”고 성토했다.

쪽방주민이 ‘철거 전에 대책이 먼저다! 쪽방주민 사전퇴거 즉각 중단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창신동 민간개발 시작, 동시에 폭력적 강제퇴거도 시작

창신동 쪽방촌은 올해 4월, 민간개발이 확정됐다. 개발 소식이 오가기 시작하면서 양동 쪽방촌에서 벌어진 강제퇴거 참사가 창신동 쪽방촌에서도 반복됐다. 2022홈리스주거팀에 따르면, 쪽방 건물주들이 쪽방주민을 강제퇴거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2020년 기준 388명이던 쪽방주민의 40%가 사라진 것으로 파악된다. 2022홈리스주거팀은 “서울시는 쪽방주민 재정착을 비웃는 건물주의 강제퇴거 행위를 즉각 중단시켜라”라고 요구했다.

창신동 쪽방에 30년간 거주한 양아무개 씨는 “몽둥이에 맞고, 불도저에 밀리고, 사람들은 벌벌 떨며 내쫓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도저에 깔려 죽겠다는 마음으로 드러누우면 철거반은 잠시 물러난다. 그러나 다시 밀고 들어온다”며 “내가 30년간 산 방의 가구가 부서지고, 내가 이웃과 함께 산 동네가 허허벌판이 되는 걸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양 씨는 “창신동 쪽방에서 먹고산 30년은 고된 인생이었다. 장애인으로, 가난한 이로, 쪽방주민으로 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며 “오세훈 시장이 직접 살아도 괜찮은 집으로 공공주택을 제공하라. 불도저가 쪽방주민을 쫓아내는 걸 보고만 있지 말고, 가난했지만 잘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선희 돈의동주민협동회 대표가 ‘집은 인권이다! 공공주택 확충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아무런 개발 소식 없는 돈의동… “공공주택 제공이 ‘약자와의 동행’”

영등포 쪽방촌은 공공개발이 진행 중이고, 동자동 쪽방촌은 공공개발 발표만 난 상태다. 양동 쪽방촌은 민간개발이 진행 중이며, 창신동은 이제 막 민간개발 고시가 이뤄졌다.

서울시 5대 쪽방촌 중 돈의동 쪽방촌만 아무런 개발 소식이 없다. 돈의동 쪽방주민은 여느 쪽방과 다름없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돈의동 쪽방촌에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시는 자가격리가 어려운 쪽방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재택치료하라며 사태를 일주일 넘게 방치했다. 김선희 돈의동주민협동회 대표에 따르면, 너무 늦게 병원에 이송된 70대 쪽방주민은 입원하자마자 결국 사망했다.

김선희 대표는 오세훈 시장을 향해 공공개발을 요구했다. 김 대표는 “돈의동 쪽방 건물에는 창문이 없는 방이 많고, 화장실 한 곳을 주민 모두가 함께 쓰기 때문에 코로나19 확진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당시 60여 명이 확진됐지만 서울시는 재택치료만 하라고 했다”며 “집단감염 사태의 원인은 열악한 주거환경이다. 오 시장은 약자와 동행한다고 했지만 우리 환경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오 시장이 복도에 단 에어컨은 오히려 코로나19 감염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오 시장은 적절한 공공임대주택을 돈의동 쪽방촌에 지어라. 쪽방주민이 감염을 걱정할 필요 없는 개인 화장실이 있는 곳에서 살도록 ‘동행’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영등포 쪽방촌을 제외한 서울시 4대 쪽방촌 대표단은 서울시에 면담요구서를 다시 한 번 제출했다. 쪽방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는 결의대회가 끝난 후 서울시청에서 청계광장까지 약 1km를 행진했다.

행진 중인 쪽방주민들. 사진 하민지

 

 

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하민지 기자 abc@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