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결국 권익옹호 직무 삭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 규탄 줄이어
“너무 억울하다… 우리 일자리 무시 말라”
“하태경에게 반드시 사과받고 싶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하태경 국민의힘 국회의원(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노동자들은 4일 오전 11시, 서울시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거주시설에 돌아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는데 하태경 의원이 우리(중증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폄하와 왜곡을 일삼고 있다”며 “인권위가 하 의원의 장애인 차별 발언을 바로잡아라”라고 요구했다.

- 결국 권리중심공공일자리서 권익옹호 직무 삭제
하태경 의원은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아래 특위) 위원장으로 부임한 지 하루 만에 ‘선진화’의 첫 단체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를 지목했다.
하 의원은 5월 30일부터 연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라디오 방송 등에서 “전장연이 불법·폭력 시위에 중증장애인을 강제 동원했다”, “서울시 보조금을 유용해 시위참여에 대한 일당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우선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자리로, 서울시가 2020년 7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시행했다. 노동자들은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등 세 가지 직무를 수행하며,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유엔협약)’을 홍보 중이다.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일자리의 가치와 취지가 널리 알려지면서 해당 일자리는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지난달 기준, 9개 지자체에서 1306명의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권리중심공공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하태경 의원이 집중적으로 문제 삼은 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하 의원은 “전장연이 집회·시위 참여를 일자리로 포장했다”고 주장하며, 권익옹호 직무만을 겨냥했다. 심지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담합한 것”이라고 말하며 권익옹호 직무에 정파적 진영논리가 깔린 듯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직무는 대대적으로 수정됐다. 지난달 말, 서울시가 발표한 ‘2023년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안내’에 따르면 권익옹호 직무는 삭제되고 문화예술과 인식개선은 통합됐다.
서울시가 마련한 새 직무는 △장애친화적 환경조성(온라인콘텐츠모니터링, 장애인편의시설모니터링) △서비스업 보조(체육시설 보조, 병원·검진센터 보조, 도서관 사서 보조) △장애인 인식개선 및 문화·예술 활동(장애인 인식개선 보조 강사, 문화·예술 활동) 등이다.
서울시는 해당 문서에서 “시위, 집회, 캠페인 활동은 일자리 활동에서 제외. 집회신고 여부 불문. 선전전, 촉구·결의·투쟁대회 및 기자회견, 가두행진 등과 유사한 행위도 (직무로) 인정하지 않음”이라고 못 박으며, 유엔협약 홍보 관련 내용을 전부 삭제했다.
경찰은 현재 특위의 의뢰를 받고 전장연이 서울시 보조금을 부당수령했는지 수사 중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전장연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한 적은 없다고 밝힌 상태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서울시의 지난 5년(2018~2022년)간 보조금 집행내역 4251건에 전장연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 중증장애인 노동 무시하는 하태경… 노동자들 “억울하다, 사과하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하태경 의원의 행태가 “장애인 차별”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진정인 중 한 명인 김탄진 노동자는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중증뇌병변장애인인 탄진 씨는 2008년에 탈시설해 2020년부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 중이다.
“탈시설해 보니 기초생활수급비로만 살기에는 너무나 팍팍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자리는 별로 없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옛날에는 내가 일할 능력이 없는 쓸모없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통해 나도 일할 수 있고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나와 우리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죽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결코 시설에 돌아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 의원은 우리의 노동을 조롱하고, 잘 모르면서 폄하와 왜곡을 일삼고 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납니다. 인권위는 하 의원의 명백한 장애인 차별 발언을 바로잡아 주기 바랍니다.” (김탄진 씨)

경기도 김포시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엄소현 씨는 지난해부터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소현 씨는 “이 일자리가 장애인에겐 너무 중요한 일자리인데 하 의원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걸 보고 너무 화가 나고, 권익옹호 직무가 없어지는 걸 볼 수 없어서 진정한다”고 말했다.
소현 씨는 “하 의원은 중증장애인을 무시하지 말아라. 유엔협약 캠페인도 노동이다.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라고 규탄했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김상진 씨는 뇌병변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이다. 상진 씨는 “혼자서 생활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 시설에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2021년부터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며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교육도 받고, 사회참여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상진 씨는 크게 분노하며 “하태경 의원에게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고 싶다. 중증장애인의 권리와 노동을 무시하고, 우리의 활동을 노동으로 치지 않는 하태경 의원은 사과하라! 사과하라!”라고 성토했다.
전장연은 오는 6일 오후 2시 시청역 환승통로에서, 권익옹호 직무 삭제와 관련해 ‘서울형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죽었다’는 취지의 집회를 열고 유엔협약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민지 기자 abc@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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