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 자료실

장애학생, 지원인력 부족으로 “시설 같은 학교” 다닌다

기장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23. 7. 17. 09:54
보조인력 부족으로 학교생활 제대로 못 하는 장애학생들
‘쉬라’면서 단체생활에서 배제
학교는 학부모에게 ‘직접 지원’ 요구하기도
장애학생 지원인력 부족, 국가 책임 묻는 소송 할 것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고 있는 이선영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학교에서 계속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교실 밖을 자꾸 나가려고 하는데 특수교육대상자가 20명이나 되고 실무사는 두 분밖에 없으니, 활동지원사를 구해서 수업 시간에 아이 옆에 있게 해달라고요.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습니다. 활동지원사를 당장 구하지 못하면 저라도 학교에 와서 지원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잘 적응하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한 달 정도 아이와 함께 등교해서 학교생활을 지원했습니다. 아이는 1학년 내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힘들어합니다. 올해는 정말 운이 좋아서 좋은 담임선생님과 특수반 선생님을 만나 사랑받으며 지내고 있지만 저는 벌써 3학년이 두렵습니다.” (이선영 씨)

14일 오전 11시,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장애학생 통합교육 권리 쟁취를 위한 기자회견이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주최로 열렸다. 장애학생에 대한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던 20년 전인 2003년 7월 15일, 부모연대의 전신인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출범했다. 교육권연대의 투쟁으로 2007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되면서 그간 특수교육은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통합교육 여건 개선,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 등 특수교육이 통합교육으로 질적 발전을 이루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통합교육의 질적 성장을 위한 특수교육법 전부개정안이 지난해 7월 22일 발의됐다. 하지만 이제까지 논의 한 번 되지 않았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50여 명의 장애부모 활동가들은 “평등한 분리교육은 없다. 지금 당장 통합교육을 지원하라”고 외쳤다. 특히 현장학습 및 수학여행, 생존수영, 학부모공개수업 참여에서 장애학생을 배제·분리하는 학교 현장의 문제를 지적하고, 지원인력의 부족으로 보호자 혹은 활동지원사 배치를 학부모에게 요구하는 현실을 문제 삼았다. 교육부에 충분한 지원인력 배치 등 완전한 통합교육을 위한 지원 계획 수립을 촉구했다.

14일 오전 11시,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장애학생 통합교육 권리 쟁취를 위한 기자회견이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렸다. 사진 강혜민

- “학교 시설, 왜 우리 아이는 이용할 수 없습니까”

시야를 가릴 만큼 세차게 내리는 폭우 속에서 장애부모들은 우비만을 입은 채 국회 본관 앞 계단에 서서 차별받은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단후 씨에겐 뇌병변·지적 중복장애가 있는 쌍둥이 아들이 있다. 두 아들은 화성시 송린중학교에 다닌다. 정 씨는 중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 화성시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특수학교 외 통합학급이 있는 중·고등학교에는 보조교사를 단 한 명도 배치하지 않은 사실에 놀랐다. 지원인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학교에 다니는 장애학생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지난 4월, 아이가 체육시간에 휠체어 탄 채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 쪽에 심한 상처와 뇌진탕을 입어 병원 치료를 받게 됐습니다. 체육시간은 보조인력 없이 학급 또래 도우미 친구들에게만 맡겨져 있습니다. 앞으로도 보조인력이 조속히 배치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체육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교내 생활이 불안과 위험에 방치되는 시간의 연속일 겁니다.

현재 저희 학교는 특수교사가 특수교육 업무 외에 학생들 신변처리와 같은 과도한 돌봄 업무까지 맡고 있어, 건강 악화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교육의 질적 하락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현장실습을 하지 않고, 장애학생 맞춤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통합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선 보조인력 배치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청각과 자폐 중복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유연주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유연주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비장애자녀와 중학교 1학년이 된 장애자녀를 키우고 있다. 장애자녀는 청각과 자폐 중복장애를 갖고 있으며, 학교의 지원 부족으로 결국 3학년을 마치고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교로 전학 갈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집 앞에 있는 통합학교를 다녔습니다. 아이는 수어통역 지원이 필요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동안 지원 한 번 받지 못한 채 꿋꿋하게 통합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비장애 아이가 입학하고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 아이(장애아동)는 점심시간에 교실에만 있어야 하는가. 도서관을 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나. 운동장을 왜 자유롭게 거닐 수 없는가. 학교에 있는 모든 시설을 왜 우리 아이는 이용할 수 없는가.

실제 아이가 교실 밖을 나가고 싶다고 표현했을 때 학교는 매번 지원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정당한 권리에서 배제되는 것은 참지 못하겠다고 끝도 없이 요구하니, 돌아온 대답은 ‘저희 아이만 일주일에 세 번 지원해 줄 테니 제발 다른 장애아동 부모에겐 말하지 말아달라’는 거였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치사한 차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시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특수학교로 옮겨갔지만 아직도 짝사랑 중입니다. 집 앞에 있는 학교에 즐겁게 다니는 비장애 동생을 볼 때마다 제가 좀 더 견디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죄책감마저 듭니다. 이런 감정을 왜 제가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 어떻게 의무교육입니까. 의무교육이라는 말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순옥 씨의 자녀는 고3이다. 학령기가 끝나간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는 꿋꿋이 버티며 통합학교에 다녔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저도 장애 자식은 처음 키워보는지라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했지만, 늘 낯선 현실에 적응하기엔 숨이 찼습니다. 교육 전문가라 믿었던 학교 선생님들의 편견과 성향에 따라 아이의 교육 환경이 좌우되는 경험은 더욱 저희를 힘들게 했습니다. 날씨가 더워 아이가 힘들 테니 통합반이 아닌 도움반에서 종일 쉬게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학교가 보육기관입니까, 교육기관입니까. 선생님들은 ‘쉬라’를 표현을 배려처럼 스스럼 없이 했습니다. 특수교육법이 있으면 뭐 합니까. 학교장 재량이라는 예외 조항이 있으니 현장은 바뀌지 않습니다. 특수교육법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학교장 재량’이라는 부분은 삭제되어야 합니다.”

장애부모 활동가가 “차별 없는 교육, 모두가 함께하는 통합교육”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장애학생 지원인력 부족, 국가 책임 묻는 소송 할 것

정의당 원내대표인 배진교 의원은 과거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무릎 꿇은 사건을 언급하며 “언제까지 무릎 꿇으며 살 수 없다. 통합교육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단순히 한 공간에 섞어 놓자는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사는 법을 교육하는 일이고,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라면서 ”통합교육이 보편교육이 될 수 있도록 입법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사회를 본 조경미 부모연대 활동가는 학교 내 장애학생 지원인력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묻는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조 활동가는 “경기도 장애학생은 2만 5천 명인데 지원인력은 1천 6백여명에 불과하다. 유아·초등 중심으로 저학년에만 배치하고 중고등학교에는 배치하지 않다 보니 부모님들이 ‘초등학교는 어떻게든 다니겠는데 중고등학교는 못 다니겠다’면서 특수학교로 많이 전학 가신다”면서 “그러나 특수학교에 가고 싶어도 거리가 멀고, 이미 과밀학급이라 갈 수가 없다. 현재도 특수학교 평균 통학시간이 한 시간이 넘는 학생이 1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며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강혜민 기자skpebble@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