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 자료실

국회 예산심사 시작, 국힘 여전히 무응답… 전장연, 매일 지하철 투쟁

기장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22. 11. 8. 13:27

7일, 국회 예결특위 예산심사 본격 시작
윤 정부가 삭감한 장애인권리예산, 국회 손에 달려
모든 원내정당이 장애인 요구에 응답, ‘국힘만 빼고’
전장연, 매일 투쟁 시작… “국힘 응답 오면 투쟁 보류”

박경석 대표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안전한 세상을 원합니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세상 정부가 책임져라! 정치가 책임져라!’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박 대표 뒤에 있는 현수막에는 ‘무책임 정부, 무응답 국힘, 이제 그만! 42차~46차 매일 지하철을 탑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7일 오전 7시 30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가 4호선 삼각지역(숙대입구역 방향)으로 모였다. 이들은 검은 옷을 입고 저마다 가슴에 ‘추모’ 리본을 달았다.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희생자를 추도하기 위해서다. 목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안전한 세상을 원합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걸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가슴 아프게 명복을 빈다. 그곳(이태원)에도, 장애인의 삶에도 국가는 없었다”며, 42차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시작했다.

전장연은 국가애도기간에 삭발투쟁, 혜화역 선전전 등 올해 주력해 온 투쟁을 멈췄다. 7일부터 투쟁을 재개한 이유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023년 예산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 장애인 활동가가 검은 옷을 입고 가슴에 추모 리본을 달고 지하철에 탔다. 사진 하민지

윤석열 정부는 지난 9월, 장애인권리예산은 단 한 푼도 반영하지 않은 정부 예산안을 국회로 넘겼다. 정부는 장애인연금 기초급여 1만 4천 원 인상, 장애수당 2만 원 인상, 활동지원서비스 단가 765원 인상 등을 하며 2조 6천억 원을 편성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전장연은 물가 상승에 따른 자연증가분이 반영된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권리예산은 장애인의 이동권·교육권·노동권·탈시설 권리를 위한 예산으로 △활동지원서비스 확대 △탈시설로드맵 시범사업 확대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운영비 확대 △장애인노동자 근로지원인 인원수 확대 등을 포함해 총 4조 2천억 원이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4조 2천억 원 중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이 3조 1196억 원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높은 금액이 아니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장애인복지지출 규모는 GDP 대비 2.02%로 한국의 0.60%에 비해 약 3.3배 이상 높다. 한국의 장애인복지지출은 유럽 주요국은 물론 일본의 장애인복지지출 1.08%에 비해서도 낮으며,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활동가들이 열차에 타고 있다. 왼쪽에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국회 예결위가 시작하면서 장애인권리예산 증액은 이제 국회의 몫이 됐다. 전장연은 9월부터 “국회가 책임져라”라고 요구하며 각 정당 원내대표와 당대표에게 면담요구서를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모두 면담에 응했고, 국회가 장애인권리예산을 어떻게 증액할 것인지 협의하고 있다.

그러나 오로지 국민의힘만 아무 응답이 없다. 9월엔 당대표격인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을, 10월엔 주호영 원내대표를 만나 면담요구서를 전달했지만 누구도 답변하지 않았다. 여당의 무시가 계속되는 사이 예산심사가 시작됐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은 다음 달 2일까지다. 전장연은 예산심사 기간에 매일 지하철 투쟁을 하겠다고 밝혔고, 7일이 그 첫날이다.

한 장애인 활동가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안전한 세상을 원합니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세상 정부가 책임져라! 정치가 책임져라!’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지하철에 탔다. 다른 승객은 좌석에 앉아 있다. 사진 하민지

전장연은 8시경, 4호선 삼각지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시작했다. 2개 조로 나뉘어 1개 조는 9호선 국회의사당역 앞 장애인권리예산·권리입법쟁취 한국판 T4 철폐 농성장으로 향했다. 나머지 1개 조는 서울시 자치구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이 진행 중인 강동구청(8호선 강동구청역)으로 향했다. 전장연은 열차 출입문이 닫히는 것을 5~10분간 막는 방식으로 투쟁했다. 4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탄 후에는 역마다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지하철에 탄 박경석 대표는 “우리가 이렇게 지하철 투쟁을 하는 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안전하게 살기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우리를 비난하고 욕해도 된다. 그렇지만 안전하게 살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지 않는 정부와 국민의힘 국회의원에게도 명확하게 책임을 물어달라”며 “매일 지하철 타는 게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않겠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마지막 절실한 마음으로 탄다”고 호소했다.

한 활동가가 스티커를 높이 들고 있다. 스티커에는 ‘당신의 세금 1.7조 원을 13만 명의 중증·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지원을 위해 낭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시설을 늘려서 당신의 짐을 줄여드리고 있습니다. T4 프로그램을 멈춰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정명호 고양아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발언을 시작했다. “안타깝게 고인이 되신 분의 명복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혐오발언이 날아들었다.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것들이 사람대우 고맙게 여겨야지, 어디서 우르르 기어나와 출근길 피해를 줘? 염치가 있어야지, 기생충 같은 새끼들이.”

정 소장은 잠시 침묵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무관심보다 욕이 낫습니다. 염치없이 오늘도 지하철 타고 출근합니다. 21년간 장애인이 외친 것은 단 하나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이동하고, 안전하게 노동하고, 다 같이 교육받을 권리 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관심 가져 주시고, 국민의힘에 따져 주십시오.”

열차 내 모습. 왼쪽 좌석에 승객 여러 명이 앉아 있다. 가운데 통로에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타 있다. 사진 하민지

전장연은 우선 7일부터 11일까지 매일 지하철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가연 전장연 활동가는 “국민의힘이 책임지는 태도로 면담요구에 응하면 지하철 타기 투쟁은 보류할 것이다. 그전까진 안전을 최우선으로, 장애인의 속도로 매일 아침에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민지 기자 abc@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