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불평등한 기후재난의 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⑤
“우린 전기도 안 쓰는데…” 기후재난 최전선에 선 홈리스

후두두둑. 휘청휘청 우산을 부여잡고 가며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어려웠던 8월 8일. 서울과 경기지역에 역대급 폭우가 내렸다. 서울지역에만 300mm가 넘는 비가 내려 지하철 역사나 선로가 잠겨 운행이 중단된 곳도 있었다. 이번 폭우는 기후위기의 단면이었다.
- 공공장소와 정보 접근권이 차단된 홈리스, 재난 때도 마찬가지
지하철 역사나 지하보도에서 많이 생활하는 홈리스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반빈곤운동단체가 모여 있는 ‘아랫마을’에서 지난 9일,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회장 로즈마리 씨를 만나 기후위기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얼마 전 함께 ‘코로나19 낭독극’을 준비하며 기후정의행진을 열심히 사람들에게 알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그는 한 손에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짐이 담긴 유아차를 끌고 왔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와서 다들 이동을 했지. 비가 오면 사람들은 서울역 광장에 있다가 (천장이 있는) 둥그런 데로 많이 모여요. 그날은 비가 워낙 많이 오니까 다들 빨리 움직였던 거 같아. 우리 같이 짐을 많이 갖고 다니는 사람들은 비가 오면 이동하는 게 좀 힘들지. 노숙인들은 기후에 민감해요. 추워지진 않나, 비가 오나 항상 날씨에 민감해.”
폭우에 많은 짐을 들고 대피하기란 여간 힘겨운 게 아니지만, 잠시라도 짐을 보관해놓을 공간이 없으니 노숙인들은 짐을 들고 움직여야 했다. 나는 폭우가 내리던 날도 서울역사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듣고 움직인 거냐고 물었다. 그는 폭우를 알리는 대피 방송이나 안내를 받고 움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끼리 오가는 말을 듣거나 서울역사에 틀어놓은 TV 뉴스를 보고 눈치껏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재난이 발생하면 지하철역이나 기차역 같은 공공장소는 시민을 위한 정보 전달과 재난 긴급조치를 하는 것이 상식일 것 같은데 현실은 반대였다. 이에 대해 옆에 있던 홈리스행동의 안형진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2011년 서울역 측이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를 시행한 이후부터 야간에 역사 폐쇄를 하고 있어요. 대합실에 켜놓은 TV는 소리가 꺼져 있는 경우도 있고 더욱이 원하는 채널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긴급 상황을 바로 알 수는 없어요. 대합실 내 홈리스로 보이는 사람들은 쫓겨나기도 하고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진짜 없어요.”

재난 상황에서 정확한 정보는 매우 중요하지만 홈리스는 이를 알기 어렵다. 코로나19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형진 활동가의 말에 따르면, 실태조사와 아웃리치 때 만난 홈리스들은 코로나19나 백신에 대해 떠도는 소문에 의거해 개인이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로즈마리 씨 또한 주변 홈리스들은 재난지원금에 대해서도 몰랐다고 한다. 일상에서 홈리스를 배제했던 공공장소나 공공시설물, 그리고 차단된 정보 접근은 재난 때에도 여전했다.
- 개발은 사람을 내쫓고 환경도 망친다
로즈마리 씨는 과거 ‘기후위기’하면 ‘미세먼지’가 먼저 떠올랐다. 서울역에 있던 한 분은 ‘공기가 좋은 ‘호주’로 가겠다는 말도 할 정도였다고 하니, 숨이 탁 막히는 공기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들에게 미세먼지는 주요 화두였나보다.
“사실 홈리스들이 기후변화에 얼마나 기여했겠어. 우리는 전기도 안 쓰는데. 얼마 전에는 자주 가는 논 같은 곳이 주차장으로 바뀌었더라고. 도시인데도 봄이면 개구리가 막 개굴개굴개굴하고 좋았어.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가서 개구리 소리도 듣고 했는데, 다 돈 벌려고 그랬겠지.”
그의 말마따나 이윤을 창출하려는 도시개발은 환경을 파괴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쫓아낸다. 그도 개발에 의해 이리저리 떠돌아야 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저도 잘 몰랐어. 그때 나는 1975년쯤 현저동 산동네에 있는 무허가집에 살았는데 재개발 때문에 이사를 가야한다고 해서 그 밑으로 내려왔지. 어른들이 해서 잘 모르는데 월세를 냈나, 몇 달을 거기서 살다 잠실로 왔어. 그때 사람들은 성남으로도 가고 다 뿔뿔이 흩어졌지. 거기엔 다 아파트가 들어섰더라고. 잠실시영아파트인가 그 딱지(분양권)를 받고 왔나 그랬어. 거기도 얼마 안 살았어.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가 많아서 우리가 모시고 산다고 해서 논, 밭, 집 팔아서 옮겼어. 시유지로 갔는데 거기가 또 개발이 된 거야. 2월 며칠까지 이사하라고 써 붙였더라고. 집주인한테는 무슨 누런 봉투 같은 거 날아가고 길에는 이렇게 막 써가지고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니 이사 가기 시작하더라고. 이사 가야 하는데 돈은 없고 고생만 했지. 사람들 다 가고 전기도 끄고 물도 끊는데, 그냥 거기 가서 잠만 자고 나오기도 하고. 사람 하나도 없는데 그래갖고 애 많이 먹었지.”
개발이 강제퇴거만이 아니라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걸 언제 알았냐고 로즈마리 씨에게 묻자, 방송이나 홈리스야학에서 많이 보고 들었다고 했다. 배에서 플라스틱이 나온 고래나 거북이를 봤다며, 본인은 물건을 아껴 쓰고 플라스틱도 덜 쓰려 한다고 말했다.
- 폭우‧폭염‧혹한… 홈리스에겐 오래된 재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말을 듣자 옆에 있던 안형진 활동가는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그는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는 기후위기 캠페인에 문제의식이 컸기 때문이다.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거나 모두의 위기이니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현실을 가린다고 생각해요. 불필요하게 피해자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고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오래 물건을 쌓아두고 사용하기 어려운데, 이런 삶의 조건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한 거겠죠. 기후정의운동은 기후변화에 가장 책임이 있는 주체, 이를테면 이윤을 목적으로 한 개발을 자행하며 끊임없이 열악한 주거로 가난한 사람들을 밀어내는 불평등한 시스템에 책임을 묻자고 말을 건네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의 주거불평등 현실을 비판하고 주거권을 나의 권리이자 모두의 권리로서 요구하는 것이 홈리스운동의 기후정의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활동가로서 취약한 삶의 조건을 바꾸고 구조의 문제에 접근하도록 당사자들과 얘기하는 것이 어렵지만 중요하다고 했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들에게는 폭우와 폭염, 혹한으로 인한 위험은 먼 미래가 아닌 현재의 일이다. 아니, 오래된 재난이다. 안정적인 주거 없이 사는 것 자체가 재난이다.
“1월에 종각인가 서울역에서도 텐트에서 자다가 누군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어. 추운 날은 지하도 같은 데서 자다가 죽고 텐트에서 자다가 죽고 그래. 잠자리만이 아니라 밥(무료급식소)도 그렇고 병원도 문제 많아. 코로나19 때는 아파도 홈리스들은 지정된 병원에만 가라고 했어.”
날씨가 추워지고 있는 요즘, 로즈마리 씨가 말한 거리의 풍경은 말 그대로 오래된 재난이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말하면서 기후만을 말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필자 소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홈리스 등 여러 소수자들이 현장에서 내는 목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인권활동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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