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협 창립 19주년 결의대회
“장애인권리예산, 권리입법 쟁취하자”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수가 확대돼야
결의대회 후 정당별 원내대표 면담 요구

2003년 10월 20일에 출범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가 출범 19주년을 맞았다.
한자협은 전국 95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센터)들의 협의체다. 센터는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자립생활 기반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 권익옹호활동, 시설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지원, 동료상담 실시, 활동지원서비스 매칭, 자립생활주택 운영 등을 한다.
한자협은 매년 창립기념 행사를 열어 중증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선언한다. 또한 이를 국가가 정책으로 구체화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한다.
19주년 창립기념일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1시,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자립생활권리 쟁취 전국 집중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500여 명의 활동가가 집결했다.

- 한자협, 거대양당에 권리예산‧권리법안 요구
한자협은 진보적 장애인운동단체의 상설 연대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함께 지난해 12월부터 11개월째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하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30일부터 윤석열 정부에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며 매일 아침 삭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까지 총 158명(19일 기준)이 삭발했는데 이 중 대부분이 한자협 소속으로, 전국 각 지역 센터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건 장애인권리예산 반영과 탈시설지원법, 장애인권리보장법 등 권리입법 제‧개정이다. 법과 예산이 있어야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이 권리로서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끈질긴 투쟁 중이지만 정부와 국회는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장애인권리예산을 폐기한 채 자연증가분만 증액한 예산안을 국회에 넘겼다. 탈시설지원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예산도, 입법도 지지부진하다.
지지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여당인 국민의힘에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관해 면담하자는 장애인의 요구를 연일 무시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은 탈시설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며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외면한다.
제1야당이자 최대 의석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책임 또한 막중하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장애인권리예산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하며 권리법안도 주도적으로 통과시켜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 또한 장애인권리예산·권리법안에 무관심하다.
이에 한자협은 거대양당에 책임을 묻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결의대회 후에는 여의도공원을 지나 민주당 당사와 국민의힘 당사까지 행진했다.
- “자립생활 위해 활동지원 24시간 반드시 보장해야”
한자협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중증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32.1%가 ‘일상생활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인원으로 치면 84만 1966명이다. 그러나 현재 활동지원을 이용하는 사람은 10만 7000명으로, 실태조사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사람의 12.7%만 이용하고 있다.
내년에도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현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활동지원예산안은 올해보다 고작 2천억 원 증액된 1조 9918억 원으로, 최저임금에 따른 자연증가액에 이용 인원만 고작 1만 명 늘렸을 뿐이다. 게다가 실태조사에서 “‘일상생활 대부분’ 타인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이들은 16만 2622명에 달하지만, 활동지원서비스 최대 시간인 하루 16시간을 받는 사람은 전국에 단 12명뿐에 불과하다(6월 30일 기준). 따라서 한자협은 자립생활의 기반이 되는 활동지원 24시간 지원을 강하게 요구했다.

노금호 한자협 부회장은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온몸의 근육이 소실돼 가는 지체장애인이다. 노금호 부회장은 “이제 혼자서 젓가락질도 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시간이 다가올수록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쟁취를 위한 투쟁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은 중증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을 꼭 쟁취해서 장애인도 당당하게 제 몫의 명을 사는 시대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활동지원서비스 수가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내년 활동지원서비스 수가는 1만 5570원이다. 여기서 수가의 최대 75%(1만 1677원)가 활동지원사 인건비로 지급되며, 나머지 25%는 기관 운영비로 쓰인다. 기관 운영비에는 활동지원사의 4대 보험을 포함해 퇴직적립금, 활동지원서비스 전담인력인건비 등이 포함된다.
즉, 수가의 75%면 내년도 최저임금과 겨우 2천 원 남짓 차이 난다. 전문적인, 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장애계는 활동지원서비스 수가를 높이고, 센터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수가에서 기관 운영비를 분리해 예산을 편성하라고 지속해서 요구해왔다.

최용기 한자협 회장은 “1만 6500원 이상은 돼야 질 좋은 활동지원서비스가 보장될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을 가지고 오늘(19일)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면담했지만 ‘노력하겠다’ 정도의 원론적 답변만 받았다”며 “활동지원서비스 수가가 대폭 확대돼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때까지 지하철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도 31개 시‧군도 자유롭게 이동 못하는 게 장애인 현실, 함께 싸우자”
한자협 산하 센터들은 탈시설권리, 이동권,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노동권 등 장애인의 다양한 권리 보장을 위해 가열찬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문애린 이음센터 소장은 “한자협이 열심히 활동해서 장애인이 탈시설하고, 활동지원서비스와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생겼다. 장애인이 한국에서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꾸역구역 만들어가고 있다”며 “힘들지만 우리가 힘든 만큼 조금씩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한자협의 19살 생일을 축하하며, 전국의 센터가 함께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정기열 한자협 부회장은 “경기도에 31개 시·군이 있다. 그러나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을 타고 경기도에 있는 바로 옆 도시로도 이동하지 못한다. 경기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장애인콜택시를 잡기 위해 한 시간씩 핸드폰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센터가 모여서 장애인권리 보장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장애인이 사회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19년이 아니라 29년, 39년을 한자협에서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 19년은 권리 만들어온 투쟁의 시간… “지하철에서 만납시다”
박현 한자협 조직실장은 한자협이 전개한 19년 진보적 장애인운동을 자랑스러워했다. 박 실장은 “한자협은 장애인차별철폐투쟁 현장에 언제나 있었다. 그게 한자협의 자랑이자 신뢰이며 자부심이다”라고 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 이사장 또한 “한자협의 19년 투쟁은 권리를 만들어온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한자협 산하 전국의 센터에서 활동하는 우리가 지난 19년간 권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 한자협 생일을 축하하는 이 자리에서 권리를 예산으로 만들어가는 투쟁을 다시 한번 결의합시다.
나는 장애인입니다. 우리는 장애인입니다. 우리는 비장애인 중심의 기준을 장애인의 기준으로 바꾸는 투쟁을 합니다. 시혜와 동정은 때려치우라고 합시다. 죄인은 우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말합시다. 장애인을 감금한 국가가 불법이라고 외칩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열리는 11월에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을 탈 것입니다. 비장애인만 태우고 가는 사회를 멈출 것입니다. 우리는 같이 가려고 멈추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바꾸려고 멈추는 것입니다. 함께 살려고 멈추는 것입니다.
전국 센터에서 온 동지와 함께 싸우겠습니다. 싸우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자협 생일을 축하하며, 다음 달에도 지하철에서 만납시다.” (박경석 전장야협 이사장)
한자협은 결의대회 후 오후 5시부터 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사까지 행진했다. 행진 과정 중 약 30분간, 여의도공원 앞 의사당대로를 점거했다. 약 6시부터 다시 시작된 행진은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정당별 원내대표 면담을 요구하며 마무리됐다.


하민지 기자 abc@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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